3년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전부터 몸이 굉장히 안 좋으셨고, 엄마는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곧 떠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장례식장에 가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나고도 그랬다.
이후 매년 한 번씩 외할머니께서 나오는 꿈을 꾼다. 건강하실 때의 모습을 한 외할머니께서 나오셨다. 외할머니의 눈은 나를 지켜봐 주실 때 항상 같았다. 건강하셨을 때도 아프셨을 때도 항상 손자를 반기는 눈은 항상 같았다. 그런 할머니의 눈을 마주치면 나는 애처럼 울면서 "저를 두고 다른 데 가시지 말라"는 말을 하지만, 외할머니는 말없이 날 안아주시는 꿈이다. 두 번 다 이런 꿈이었다. 이러다가 잠에서 깨는데, 이 꿈을 꾼 날은 베개 커버를 빨래해야 하는 날이다.
*스포일러 주의*
*스포일러 주의*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첫 번째 관람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좋아서 두 번 본 게 아니다. 첫 관람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뭔가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고, 주역들의 심리묘사는 얕고, 조력자들은 너무 착했고, 다이진을 <데스 스트랜딩>의 '아멜리'처럼 이해해야 하는 건가 와 같은 생각이 보는 내내 맴돌아 첫 관람을 망치다시피 했다.
그렇게 매긴 점수는 별 5개 만점에 3개, 이것도 많이 줬다고 생각했다. 금방 잊힐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 왔지만, 뭔가 신카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특히나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의도적으로 배제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터뷰도 보고, 일본 대지진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고 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재관람이었다.
두 번째 관람
스즈메라는 캐릭터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가자면, 영화 내에서 스즈메의 깊은 심리묘사는 없다시피 하다. 이러한 심리묘사의 부재는 지극히 의도된 것으로 보이며, 관람하는 개개인의 상실의 경험을 스즈메에게 투영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스즈메는 관객이 가진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를 담게 하는 그릇인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아야 스즈메라는 캐릭터가 완성이 된다. 그냥 짧게 말하면 과몰입하라는 거다.
신카이 감독이 스즈메의 심리묘사와 백그라운드를 깊게 했다면, 이해하기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관객은 이야기를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는 제삼자의 위치에만 고정되어 버린다. 관객 개개인의 상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배제는 신카이 감독의 섬세함이 묻어 나오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재난사고를 겪은 사람들 중 생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허무주의적이고 무감각하게 바뀌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스즈메는 동일본대지진의 생존자이고, 누군가를 잃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살아남는 바람에 이모의 인생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하며, 살고 죽는 건 단순한 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스즈메와 비슷한, 재난과 상실의 경험을 한 관객들은 신카이 감독이 만든 공백에 각자 저마다의 아픔을 담게 되고, 심리묘사가 드러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스즈메가 왜 소타와 함께 여행을 하는지, 왜 요석이 된 소타를 목숨까지 바쳐가며 살리려고 하는지, 왜 최후반부에 사실 죽는 게 두려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말부에 신카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깊이 와닿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관점으로 영화를 봤다 그 얘기다.
원래 스즈메에 대한 자세한 해석을 줄줄 써내려 갔는데 다 지웠다.
내 멋대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상처를 판단하고 규정짓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또한 관객들이 이입해야할 스즈메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건 영화의 의도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해석글보다도 2차 관람을 위한 가이드 느낌으로 글을 작성했다.
결론
<스즈메의 문단속>은 개인적인 경험의 결부가 있어야 완성되는 영화이다. 그렇다 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누군가에겐 작화만 좋고 스토리는 빈약한 영화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잊고 있었거나 잊고 싶었던 상처에 대한 위로와 치유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첫 관람 후 무심하게 영화관을 떠났고, 두 번째 관람 때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 하고 티슈 찾고 있었다. (5년 만에 영화 보다가 울어봤다.) 영화 680편 넘게 보면서 정말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확실한 건, 두 번째 관람 후 점수를 높게 주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2차 관람을 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원래 신카이 감독의 영화들은 감정부터 내세우느라 설득이 없다고 깠는데,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내가 틀렸다.
★★★★☆ (4.5 / 5.0)
마치며...
올해는 아직 외할머니께서 꿈에 나오시진 않았다. 올해 꿈은 다를 거라 믿는다. 이번 꿈에는 외할머니께 '전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두서없이 줄줄 써낸 글 읽으신다고 시간 써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는 요소와 단점으로 인식한 요소들을 자세하게 넣고 싶지 않았다. 자세하게 써 내려갈 능력도 없고. 넣었다면 다른 분들의 글과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새 꽃샘추위가 오려고 하는 것 같다. 옷 잘 챙겨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시길 바란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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