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여태껏 2편 밖에 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도 드라마 데칼로그의 두 에피소드를 늘린 거니까, 사실 그의 영화를 본 적 없다고 말해야 하나. 아무튼 이번에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는 건 색이다. 박쥐 때부터 계속 색깔 타령을 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언급없이 넘어가면 안 될 정도로 톤을 잡아놔서 얘기를 해야겠다. 베로니카/베로니크를 중점으로는 노란 빛깔의 세피아 톤이 쉴 새 없이 나뒹군다. 그와 동시에 붉은색과 초록색의 존재감도 끊임없이 피력되는데, 마치 신호등을 연상하게된다. 신호등의 노란불은 어떤 위치인가. 빨간불과 초록불의 징검다리이자, 제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존재와도 같다. 영화 속 베로니카/베로니크도 그렇다. 피아노 연주가에서 성악가로, 학교 음악 선생이었다가 친구의 증인,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었다가도 다른 누군가의 연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지칭할 단일한 호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타인이 붙여준 호칭에서 늘 방황하다가 죽는다.
대체 불가능한 상실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심지어 그것이 근원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영혼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절단과도 같은 그런 상실감 말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그러한 미지의 상실감을 알게 모르게 이미지로 담아내고 이야기한다. 1부에서의 베로니카는 사람을 찾더라도 어떠한 목적이 존재하거나, 사람이 찾아온다. 마음 속 한켠엔 물리적으로 혼자여도, 심적으로는 아니라고 느낀다. 2부의 베로니크는 1부의 베로니카의 죽음에 자신조차 모르는 영향을 받고 영혼의 고립을 맞이한다. 성악으로 추정되는 레슨을 그만두며, 표면적인 목적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찾고,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통해 공허감을 잠시나마 잊는다. 마치 영혼없는 인형마냥, 누가 붙잡고 움직여주지 않으면 생동감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말미에 알렉상드르와의 만남으로 상실감을 어느 정도 덮게 되지만, 그게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구 최후의 밤'을 떠올리게 한다. 1부에서의 상징이 겉으로는 느슨하게, 속으로는 강하게 2부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 (3.5 / 5.0)
이미지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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