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가 독특하고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저명하다. 그의 연출 또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추상성이 강한데, 그 중 가장 박찬욱 감독의 색깔이 진하게 드러나는 영화가 박쥐이다. 여과없는 폭력성과 맥시멀리즘에서도 미니멀리즘에서도 강렬하게 빛을 발하는 미장센, 그리고 정서경 각본가의 각본이 얹어져 나온 핏물 덜 빠진 날고기 같은 영화이다.
박쥐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것들은 색이다. 상현으로 대표되는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태주로 묘사되는 야경에 녹아든 푸른 톤과 파란 의상들, 뱀파이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핏빛 붉은색이 그렇다. 흰색은 주로 깨끗함과 순결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지만, 박쥐에서의 흰색은 욕망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인다. 흰색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비어있다는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흰색에 붉은색이 발리면 그 무엇보다도 눈에 띈다. 와이셔츠에 묻은 피처럼, 뱀파이어가 되어 욕망을 갈구하는 상현의 죄악감이나 흔들림을 흰 배경에 피를 쏟아붇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상현의 심리를 그대로 표현한다. 상현의 죄를 대놓고 보여주듯이 말이다. 오히려 검은색에는 피가 튀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신부복을 입고 살인과 죄를 저지르는 상현의 캐릭터적 아이러니를 직설적으로 내리꽂는다. 태주를 구원한답시고 화장실에 들어가 언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면, 구원을 행한다는 신부의 모습보다는 본능적인 욕구를 표출하는 하나의 인간 아닌 무언가처럼 보인다. 검은색엔 욕망이 묻어도 눈에 띄지 않는다.
태주는 자기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면서 파란색 옷을 입고 푸른색 밤 야경에 물든다. 태주의 파란 원피스에는 피가 튀면 검은색으로 보인다. 파란 옷에 뭔가 묻으면 티가 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피에 옷이 검게 물들어도 태주는 이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검은색으로 상징되는 욕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런 푸른색에 동요하는 이는 상현이다. 뱀파이어는 밤에 활동해야한다. 박쥐에서의 밤은 푸른 빛깔로 묘사된다. 밤에 활동하여 피를 빨아야하는 뱀파이어이자 태주에게 빠져버린 상현의 욕망을 푸른 톤으로 드러내다가 태주가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 순간부터는 이 푸른색은 상현이 참아내야할 시련처럼 보이기도 한다.
★★★★☆ (4.5 / 5.0)
이미지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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