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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영원한 순간이거나, 순간이 영원하거나, 지구 최후의 밤

by 2월56일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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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꿈 같은 영화들이 있다. '인셉션'같이 꿈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 영화 자체가 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것들 말이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들이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이 대부분 게임 LSD스러운 기괴한 악몽 같긴 하지만 말이다. '지구 최후의 밤'은 그 어떠한 영화보다도 '몽환'이라는 단어에 가깝다.

'지구 최후의 밤'이 조명하는 대부분의 것은 낡은 인공물이다. 그리고 이를 시간의 흐름에 먹혔다는 듯이 조명한다. 쇳덩어리는 녹슬고, 시멘트 벽은 무너져있고,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여기에 밤과 각기 다른 색의 네온틱한 빛을 더하면 '지구 최후의 밤'의 비주얼이 완성되어 있다. 마치 오래된 장벽에 붙은 이끼를 숲처럼 접사 촬영한 듯한 기분이 들며, 새벽녘 길가 옆 수로 속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비단잉어 치어를 발견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니면 테임 임팔라의 Past Life나 라디오헤드의 Pyramid Song을 2시간 동안 '봤다'라고 해야하나.

'지구 최후의 밤'이 선사하는 꿈은 순간과 영원이다. 1부에서의 극 진행이 파편화된 이야기의 조합이자 깨어있는 상태에서 꿈의 흔적을 추적하는 느낌이라면 2부의 극 진행은 꿈 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 하나의 순간을 영원토록 남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행문과도 같다. 전반부가 순간순간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다 써버린 폭죽의 잔재이자 먹고 버린 자몽 껍질이라면 영화의 제목이 뜬 뒤의 후반부는 주인공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 고유한 순간을 고장난 시계가 가리키는 시,분,초처럼 묘사하고, 사진으로 남겨진 휘발하는 폭죽의 빛처럼 표현한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는 벅차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겐 그게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도 있다. 꿈 속을 뒤따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슷한 방향성의 영화들이 떠오르는데, 그 중 가장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고 이 분야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개인적인 관점에서)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이다. 하나 확실한 사실은, '지구 최후의 밤'은 '이레이저 헤드'를 떠올릴 때 반사적으로 같이 떠올리게 될 영화라는 것이다. 경이로운 경험이다. 이걸 극장에서 봤다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 (5.0 / 5.0)

 

이미지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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