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전쟁 영화하면 생각나는게 뭐가 있는가. 전면전 묘사와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어버리는 동료, 무능한 상관과 멍청한 명령, 끊임없는 살육이 만들어내는 광기와 공포가 전쟁영화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 영화가 갖출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전쟁영화가 나와있고, 수많은 클리셰가 난무하지만,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그 클리셰도, 그 메시지도, 그 이미지도 모두 착실하게 수용해 스크린으로 내보낸다. 그것도 매우 모범적으로 말이다. 그렇다. 어쩌면 그냥 흔해 빠진 전쟁 영화 1로만 남았을 수도 있었을 이 영화는 당당하게도 성공한 리메이크작이라는 라인업에 올라갈 만한 작품이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흔한 전쟁영화의 요소를 가져와서, 특별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근본적으로 전쟁 영화에서 느껴질 대부분을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이게 묘사한다. 그리고 전시상황에 내던져진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의 혼란과 공포, 시선을 본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힘과 연출의 강약조절을 이용해 완성한다. 이 영화와 비교될 영화는 '핵소 고지'가 아닐까 싶다. '핵소 고지'의 전투 장면은 블록버스터스러운 연출을 이용해 전투의 박진감만을 가져갔다면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전투 장면은 차디찬 톤과 사실적인 분장, 단일 인물의 시선만을 따르는 방법을 통해 전쟁의 코스믹 호러스러움을 부각하여 영화의 주제에 도달한다.
이 영화는 전투 장면보다도, 전투 이외의 장면이 더 인상 깊은 영화다. 모든 아드레날린이 휘발한 뒤의 상황은 이상하리만큼 섬찟하다. 탱크와 화염방사기가 휩쓸고 지나간 평원엔 곳곳에 파인 구덩이와 고요함만 남고, 방금까지 미친듯이 서로를 죽이려던 이들이 11시가 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참호 안을 유유히 돌아다닌다. 단순히 숲을 촬영한 장면이지만 고요함보단 불안한 적막이 느껴지고, '이제 끝났다'라며 환호해도 뭔가 남은 듯한 긴장감이 깃들어있다. 잔혹한 전투 시퀀스와의 이상할 정도의 괴리감을 벌려두고 팽팽히 줄다리기를 하는 균형감은 상당하다.
이제는 너무 흔해져버린 이야기지만, 계속 곱씹어볼수록 묵직한 연출의 힘이 그 단점을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4.0 / 5.0)
이미지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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