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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에드워드 양의 도시 읽기,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

by 2월56일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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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여태껏 2개 봤는데, 하나는 다른 대만 뉴웨이브 신예 감독들과 함께한 광음적고사와 도시적 서늘함이 돋보이던 공포분자였다. 둘 다 보고 느낀 점에선, 모든 카메라가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얼떨결에 얻어걸린 장면은 하나도 없고, 수학 공식이나 훌륭한 코딩의 결과물처럼 의도대로 담긴 장면들의 연속이 에드워드 양의 연출 방식이자 그의 철학과도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타이페이 스토리도 그의 작법이 담긴 영화다. 일상적인 대화에서조차 모습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도시와 과거를 거부할수록 과거에 집착하는 아룽, 인간관계 속 공허감에서 허우적댈수록 더 깊게 빠져든다고 느끼는 수첸, 그리고 이를 숨 막힐 정도로 빡빡하게 담아내는 카메라를 통해 도시적 공허감이라는 주제의 완성을 이뤄낸 작품이다.

좋은 주제의식과 별개로 놀라운 영상미가 사람을 붙잡는다. 미니멀리스틱한 수첸의 집과 대조되는 타이페이 도로에 맥시멀리스틱하게 찬 차량의 행렬, 수첸의 동생의 아지트 밖 네온사인과 같이 모든 면에서 그렇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듯한 도시적 분위기를 관조하는 카메라의 힘은 과한 필터의 능력을 빌리지 않아도 그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3번째 주역은 타이페이 그 자체다. 인물들의 대화에서도 차량이 달리는 도로가 담기거나 아예 차량이 인물들 앞을 지나치고, 운전을 하는 쇼트에서도 차 내부에서가 아닌 바깥에서 내부를 찍는 선택을 해 도시의 풍경이 담긴다. 주역들이 슬픔과 공허함을 느끼는 이 장소가 바로 타이페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건물 위에서 도시를 내려보더라도, 타이페이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 속 타이페이의 실재는 강렬하다.

두 인물의 결말은 마치 우유에 빠진 두 마리 쥐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를 거부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매달린, 자기 자신조차 부정하려는 아룽은 결국 예전이라는 허상에 잠식되어 최후를 맞고, 공허감에 허우적거리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은 수첸은 타이페이를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수미상관을 이룬다. 도시는 허상에 목 매달린 자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멍하더라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그렇지만 도시에선 끊임없는 움직임조차 허공에 흩날리는 담배연기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에드워드 양은 도시를 그렇게 본 게 아닐까.


★★★☆+ (3.5 / 5.0)

 

이미지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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