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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이창동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보여줘야 할 영화, 영화 <박하사탕> 재리뷰

by 2월56일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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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창동의 장편 영화가 6편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중범죄나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이창동의 필모그래피가 굉장하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6편은 너무 적다. 이창동의 영화들은 불편하면서도, 지긋이 앉아 상황을 조용히 노려보는 듯한 힘을 가졌다. 어찌 보면 한국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포지션이 아닐까 한다. 물론 연출적인 차이점이 크긴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시작한 만큼, 고레에다의 영화는 영상으로 거의 모든 것을 이루어낸다. 그것도 과한 기교 따위 없이도 말이다. 누군가와의 거리감을 표현할 때도 그렇고, 감정을 스크린에 녹여 낼 때도 그렇다. 영화라는 매체를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어떤 위치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창동은 어떤가. 이창동 영화의 문학적 빛깔은 유일무이하다. 국어 교사에서 소설가로, 이후 영화감독의 위치까지 오른 이창동의 영화는 문학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소설의 재질이 강하다. 그렇다고 이창동의 위치가 고레에다의 밑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고레에다는 영화의 근본적인 힘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고, 이창동은 영화를 현대문학 그 자체로 재구성해 내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의 카메라가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그 카메라가 조망하는 것은 현저히 다르다.

이창동의 두 번째 영화인 박하사탕도 초록물고기만큼이나 현대문학의 질감이 강하다. 기차와 절뚝이는 다리와 같은 문학적 메타포가 가득하고, 시간의 역순을 통해 만들어낸 극사실주의적인 캐릭터, 개인의 인생에서 확장해 나가는 이야기의 보편성까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현대문학 소설 한 편을 읽은 듯한 경험을 안겨준다.

박하사탕이 이뤄낸 성취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시간의 역순으로 극을 진행하는 방식이 가장 돋보인다. 시간순으로 김영호를 조명한다면 그냥 '한 시대에 휘말려 망가져 가는 인간상'이라고만 여겨질 것이지만, 영화는 김영호에 대한 시선을 의도적으로 교란한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 도달하면, 그를 동정해야 할지 비난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한 인물을 그려서 관객에게 전하는 대신, 빈 도화지를 내밀고 관객이 직접 그리게 만드는 훌륭한 연출 방식이다.

 


★★★★★ (5.0 / 5.0)

 

이미지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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