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알못인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앨범의 사운드가 아닌 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초창기의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의 진두지휘 아래 사이키델릭 락 밴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지만, 2집 이후엔 시드 배릿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더 이상 시드 배릿은 핑크 플로이드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다. 시드의 탈퇴 이후 밴드는 여러 장르적 결합을 시도했지만, 그것이 핑크 플로이드의 방향성을 정착시킨 건 아니다.
1969년, 붉은 왕 바알제붑이 프로그레시브 락이라는 왕국을 세웠다. 엄밀히 말하자면 프로그레시브 락은 이미 어렴풋이 존재하긴 했으나, 정립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프로그레시브 락의 개천절은 킹 크림슨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 발매된 날이 되었다. 그리고 1971년, 핑크 플로이드 또한 프로그레시브 락에 제대로 손을 대보기 시작한다.
Meddle은 One of These Days로 강렬한 첫 스타트를 끊는다. 단순하면서도 곡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베이스 라인과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키보드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그렇게 올린 긴장감을 내레이션과 함께 터뜨리는 능력은 이미 이 밴드가 6집까지 낸 베테랑이라는 증거이다.
바로 다음 곡인 A Pillow Of Winds는 앞 곡의 바람 소리에서 이어진다. 사이키델릭하면서도 미지근한 온도를 전달하는 이 곡은, 앞 곡의 텐션을 배신하듯 기타를 필두로 해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3번째 트랙인 Fearless는 나른함을 깨워주듯 힘찬 곡조를 띄다가도 앞 트랙의 정서를 이어받는 몽롱함도 끼워 넣는다. Fearless는 재밌게도 곡의 중간중간 들려오는 리버풀의 응원가로 끝을 맺는데, 곡의 당찬 정서를 끝까지 이어가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San Tropez로 재즈로 화제 전환을 한다. 당황스러운 전환이지만, 사이키델릭한 핑크 플로이드의 정체성을 놓지는 않아서 흥미로운 편이다. 이 당혹성이 끝나기도 전에 컨트리틱한 기타와 함께 개소리가 들린다. Seamus로 앨범의 종잡을 수 없는 A 사이드가 그렇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Meddle의 진가는 LP판을 뒤집어 재생하는 순간 나타난다.
Echoes는 수직적이다. 좀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우주에서 심해로 직선으로 내리꽂았더니 다시 우주가 나오는 구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잠수함 음파탐지기를 연상시키는 소리로 시작을 하는 Echoes는 Meddle의 앨범 아트에서 느껴지는 신비함과 편안함에서 신비함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물론, 당연히 편안함을 담당하는 건 사이키델릭 락으로 이루어진 A 사이드이다.
아무튼 곡 설명으로 돌아가서, Echoes의 첫 번째 파트는 앞서 표현한 것처럼 우주적인 사운드를 펼쳐준다. 추상적인 이미지로 시작한 곡에서 약 7분가량을 점층적으로 분위기 조성을 해가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두 번째 파트는 여기에 쓰인 모든 악기가 선명할 정도로 존재감을 피력한다. 칼같이 바뀐 드럼 비트와 지층을 단단하게 붙잡는 베이스,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기타와 키보드의 조화는 듣는 재미를 띄워준다. 나는 이 부분을 바다로 부르고 싶다.
그렇게 진행되는 두 번째 파트가 페이드아웃되면서 세 번째 파트로 이어지는데, 음산한 앰비언트 사운드와 허공을 가르는 듯한 기타 노이즈,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는 마치 공동묘지나 어두운 숲, 혹은 심해와도 같은 이미지를 뇌내에서 재생시킨다.
네 번째 파트는 곡의 시작에서 들렸던 소나 사운드로 시작한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임과 동시에 이 곡의 최고의 순간인데, 앨범의 첫 곡인 One of These Days를 연상시키다가도 우주에 대한 경외감과도 같은 정서를 기타 리프로 풀어낸다.
마지막 파트는 수미상관이다. 첫 번째 파트와 똑같은 것 같지만 가사도 다르고, 기타의 멜로디도 조금 다르다. 마치 평행우주에 도달한 것과도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데, 그렇게 표현한다면 네 번째 파트를 블랙홀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게 핑크 플로이드는 Meddle을 통해 명백히 프로그레시브 락의 일원이 되었다. 이러한 장르적 정착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적 방향성이 확고해졌고, 이후 앨범들이 핑크 플로이드의 커리어를 휘황찬란하게 장식한다는 점에서도 Meddle의 성공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Meddle이 덜 유명한 이유가 뭐냐고?
2년 뒤인 1973년에 핑크 플로이드가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음반 중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https://bendodson.com/projects/itunes-artwork-finder/
'음악 > 앨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인 인치 네일즈가 선사하는 자기파괴의 미학, 음반 <The Downward Spiral> (0) | 2024.06.20 |
---|---|
아케이드 파이어의 매그넘 오푸스, 음반 <Funeral> (1) | 2024.06.16 |
아마도 평생을 함께 할 앨범, 음반 <In Rainbows> (0) | 2024.06.15 |
보유하고 있는 앨범 (2/2) (0) | 2023.06.18 |
보유하고 있는 앨범 (1/2) (0) | 2023.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