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음알못임*
첫 곡부터 사람을 휘어잡는 앨범들이 간혹 있다. 그 정도가 너무나도 강렬하고 빛이 나서 후속 트랙들이 첫 트랙과 비교되고, 첫 트랙의 후광에 가려지는 음반들 말이다. 당장 생각나는 음반은 테임 임팔라의 Currents와 clipping.의 Visions of Bodies Being Burned(얘는 두 번째 트랙)이 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아케이드 파이어의 Funeral도 그렇다. 유독 그렇다.
첫 트랙인 Neighborhood #1 (Tunnels)는 아마도 아케이드 파이어 커리어에서 가장 위대한 곡이 아닐까 싶은 강한 인상을 준다. 마음 속 깊은 슬픔까지 끄집어 내지르는 듯한 윈 버틀러의 보컬과 챔버 팝 특유의 아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악기들의 존재감과 필요한 순간에 딱 튀어나오는 기타 리프, 그리고 고양된 감정을 터뜨리는 마지막 아카펠라까지, Funeral이 어떤 음반인가를 확실하게 못을 박아버린다.
Funeral은 북유럽 어딘가의 시골 마을 크리스마스 밤 같은 분위기를 깔아놓고 이 톤을 끝까지 일관성있게 몰고간다. 밝은 분위기와 통통 튀는 듯한 리듬감 속 어딘가 슬픈 바이브를 조성하기도 한다. 앨범 이름이 장례식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숨겨져 있는 슬픔의 바이브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이름과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희망 찬 분위기를 내세운 선택은 탁월하기도 하다. 마치 겉으로는 긍정적이지만 속은 우울감으로 가득 찬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Funeral의 독특한 점은 의도된 투박함이라는 것이다. Crown Of Love에서 그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시작부터 깔고 가는 피아노의 사운드부터 왈츠틱한 드럼과 전체적인 곡의 기운을 조성하는 현악기까지 이 모든 요소가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음악을 지향하는 대신 고전틱한 풍미를 끌어올린다. 이처럼 Funeral의 대부분의 곡들은 이전에 없었던 전위적인 음악적 시도 대신 과거의 향수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가공해서 만들어 낸 고급진 결과물처럼 들리기에, 오히려 더 놀라운 것이다. 더 이상 발전이 없어 보이던 음악적 물감을 가져와 앨범의 색채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는 사실이 대단할 뿐이다.
이미지출처: https://bendodson.com/projects/itunes-artwork-finder/
'음악 > 앨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인 인치 네일즈가 선사하는 자기파괴의 미학, 음반 <The Downward Spiral> (0) | 2024.06.20 |
---|---|
아마도 평생을 함께 할 앨범, 음반 <In Rainbows> (0) | 2024.06.15 |
지금의 핑크 플로이드를 만들어준 초석, 음반 <Meddle> (0) | 2024.06.15 |
보유하고 있는 앨범 (2/2) (0) | 2023.06.18 |
보유하고 있는 앨범 (1/2) (0) | 2023.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