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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슬픔의 삼각형> 후기

by 2월56일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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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미 우리는 계급을 다룬 영화들에 대해 이미 접해본 바가 있다.
<기생충>만 해도 우리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여기 또 계급을 다룬 영화가 등장했다. 
그것도 황금종려상을 안고 왔다.
<기생충>처럼.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주의*

 


본론

영화는 3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칼과 야야 커플의 이야기, 두 번째 파트는 요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 그리고 마지막 파트는 아무도 없는 듯한 섬에 고립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모든 파트가 하나의 주제인 사회적 지위와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게 각각의 파트가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고, <슬픔의 삼각형>이 완성된다.
 

<슬픔의 삼각형>에선 지위가 중요한 의미이다.
그리고 <슬픔의 삼각형>에서의 지위는 엎어지고 뒤집힌다.
재밌게도, 이러한 뒤집힘의 순간에는 내부적인 요인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 먼저 앞선다.
요트에선 해적의 수류탄으로 시작하였고, 마지막은 섬에서 발견한 엘리베이터로 인해.
이러한 지위의 전복에는 누군가의 앞장섬이 있기보다 우연이 앞선다.
그렇기에 <슬픔의 삼각형>에서의 위치의 전복을 누군가의 우상화보단 비웃음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영화에 전체적으로 깔린 냉소적인 시선은 누가 위고, 누가 밑이고, 누가 위대하고, 누가 저급한 지를 보여주는 게 주목적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 같다.
부유하고 품격 있어 보이는 요트의 승객들은 배가 흔들리자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을 토해내느라 지저분해 보이고, 대조적으로 이를 치워내는 승무원들의 모습은 숭고하게 보일 정도이다.
이러한 몽타주의 연속은 영화 속 사회적으로 높으신 분들의 이미지를 끌어내림과 동시에 3부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2부에서 언더독들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던 관객들이 3부에서의 아비게일을 보게 된다면 언더도그마에 대한 불편함까지 불러일으킨다.

 

3부에서 그녀는 본인의 능력을 이용해 조직을 마음대로 제어한다.

2부에서 승무원들에게 수영하라고 명령하는 베라와 비슷해 보인다.

다만 그 권능의 원천이 돈이냐 생존 기술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아비게일은 그냥 해적이 던진 수류탄이라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계급의 꼭대기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마치 젠가 게임처럼 뽑아낸 나무토막이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처럼, 아비게일도 그렇다.

아마 2부에서 보여줬던 모든 승객들도 우연에서 기회를 잡아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닐까 한다.

 

대표적으로 인플루언서의 삶을 사는 야야가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플루언서인 야야는 글루텐 불내증이 있지만 파스타를 먹는 척하며 사진을 찍고, 본인이 돈을 내 구매한 것보다 들어오는 무료 협찬이 더 많다. 대중들이 야야와 같은 인플루언서들을 원하는 우연한 계기가 생겼을 것이고, 야야는 본인의 외모를 이용하여 연기하는 척하여 기회를 얻은 게 아닐까.


그렇다 보니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계급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 같아 보인다.
오히려 영화의 주목적은 "모두 다 똑같은 족속들이 왜 계급 가지고 지랄이냐"를 표현하는데에 있는 듯하다.
계급의 삼각형을 채운 것은 서로 다른 밀도를 가진 액체들이 만들어낸 칵테일이 아니라, 사실상 에비앙이 아닐까.
 

또 하나 눈여겨볼 포인트는, 계급의 전복이라는 말이 계급이 역진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부에서는 아비게일이 리더가 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가 각자의 원래 지위에 변함없이 머무르고 있다.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계속 대우받는 디미트리, 그리고 그의 수염을 깎아주며 해적 농담이나 받아쳐주는 넬슨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삼각형은 아무리 넘어뜨려도 꼭짓점이 위를 향한다.
전복이 존재한 이후 막상 변화한 것은 없어 보인다.
 

영화의 가장 큰 마이너스 포인트는 직설적인 화법에 있다.
직설적인 묘사로 인해 영화의 메타포가 얕아 보였고,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도 단순했다 보니 마치 감독이 "내가 원하는 답 나올 때까지 난 이 자리에서 계속 내 얘기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영화가 질문을 던져놓고 정해진 답변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감독은 3년 전 시사저널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잘 숨기고 미국에 전파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장난일 가능성이 높지만)
영화 속 캐릭터에 스테레오타입을 심어놓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숨기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연유로 계급이라는 인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상징에 대해 관객에게 여러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기보단 감독의 주관을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적나라함이 의도였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심도 있게 다룰 수 있는 주제를 평면적이고 얄팍하게 다룬 것 같다고 느껴진다.
 


결론

오래간만에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영화이긴 했으나, 영화의 설명 방식이 너무나도 불호였다.
왜 <기생충>이 호불호 없이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을 받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는 안티테제에 가까워 보일 정도이다.
 
★★★ (3.0 / 5.0)
 


마무리

다음 주엔 그다지 볼 만한 영화가 없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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