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
<유전>은 걸작이었다.
치밀한 각본과 미장센, 영화 내내 깔린 기괴하고 불편한 감정, 그리고 파국을 향해가는 모든 컷들의 조합이 <유전>이라는 결과물이다.
본인 기준에선 21세기 공포영화 중 가장 최고의 공포영화가 아닐까 싶다.
<미드소마>도 굉장했다.
다만 표현방식이 너무 과해, 영화가 이를 담다가 넘쳐흐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렇듯 아리 애스터의 영화는 기이한 이미지과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준다.
진짜 미친 새끼가 따로 없다. (다방면으로)
4년.
4년을 기다렸다.
그가 이번엔 두뇌에 어떤 전기적 자극을 줄지 기대했다.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주의*
본론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무엇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왜 저런 장면이 나오지", "아니 저게 말이 되나"처럼 논리를 앞세우고 하는 말은 '보'의 여정을 따라가는 데에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모든 시선을 주인공 '보'를 통해 따라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트라우마와 죄책감, 불안감과 미지에 대한 공포에 빠져 허우적대는 '보'가 바라보는 세상을 보는 것이다.
놀라운 경험이다.
엄마인 모나, 다락방, 일레인, 아버지에 대한 복잡하고도 얽히고 설킨 '보'의 심리를 그대로 담아내어 '보'가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관객에게 불쾌할 정도로 뿌려댄다.
마치 내 골통을 도끼로 쪼갠 뒤 '보'의 뇌를 이식받는 듯한 영화이다.
가장 압권인 장면은 다락방 씬이다.
다락방은 '보'의 트라우마의 근원이 된 곳처럼 보인다.
엄마에게 대들던 용감한 '보'는 다락방에 갇혀있고, '그' 모양을 한 아버지는 '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적 결함이 만들어낸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연상시키며, 현재의 두려움을 만들어 낸 지브스까지, '보'의 모든 근원적 공포가 다락방에서 드러난다.
동시에,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보'를 구성하게 되었는가를 각인시키는 장면이다.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첫 챕터에선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늦게 일어나 비행기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집 열쇠는 사라지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물과 함께 먹어야 할 약을 그냥 먹는 바람에 물을 미친 듯이 찾아대고, 물을 찾으러 잠시 집 밖을 나간 사이 가장 안전해야 할 본인의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엄마와의 통화와 거미까지.
이렇게 '보'가 느끼는 모든 불안감을 물이 가득 찬 수조를 깨듯이 스크린 너머로 쏟아낸다.
엔딩.
마치 아리 애스터의 단편인 <뮌하우젠>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엄마로부터의 도피를 실패한 '보'의 최후는 마치 어릴 적 샤워하기 싫어하던 보와 대조된다.
결국 '보'는 엄마 손에 잡혀 욕조에 끌려간 것이나 마찬가지고, 뒤집힌 보트는 관처럼 보인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를 내비치는 '모나'와 등장하는 엔드 크레딧, 재판이 끝나자 하나둘씩 퇴장하는 참관자들(이자 관객들).
아리 애스터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결론
개인적으론 <이레이저 헤드>에 대한 아리 애스터의 재해석이자 감상문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레이저 헤드>를 불안이라는 초점에 맞춰 봤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영화이고, 몇 년만 지나면 컬트가 될 영화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아리 애스터를 믿는 신도나 마찬가지다.
★★★★ (4.0 / 5.0)
마무리
여담으로, 젤 위에 올려둔 Reborn의 유튜브 댓글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댓글이 있었다.
'지옥의 아침이 밝아오는 것 같다'
적절하다.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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