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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후기

아버지와 지옥 그리고, <화란>

by 2월56일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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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평소에 느와르 영화를 찾아보지는 않는다.
내 개인적인 영화 취향이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코르네토 삼부작 같은 영화에 열광하다 보니,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듯한 느와르 장르에 대해선 손이 잘 안 간다.
그렇다고 안 본다는 건 아니고.
좋은 작품이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화란>이 그렇다.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본론

<화란>은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나는 듯한 영화다.
비교 대상으로 적절하지는 않지만 로버트 에거스의 <라이트하우스>가 온갖 해초에 휘감겨 좌초된 생선에게서 나는 비릿한 냄새라면, <화란>은 새벽녘 저수지에서 건져 올린 민물고기를 손질하고 버린 내장에서 나는 듯한 비릿함이 느껴진다.
그만큼 <화란>은 날것의 질감이 확실한 영화다.
그렇다고 뜨겁게 폭주하지도 않는다.
표면은 잔잔하지만 표면 아래는 경사지고 미끄러운 바위로 가득한 깊은 계곡 같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화란>은 아버지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아버지를 닮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속한 소속은 간신히 이어져있고 깨지기 쉬운 가족과도 같다.
극 중 '연규'의 가족은 거의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고, '치건'이 속한 조직 또한 정치 활동에도 연루되어 있는 만큼 단단해 보이지만, 그 조직 또한 알게 모르게 금방 깨어질 것처럼 보인다.
그 내부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눈에 띈다.
'연규'와 새아버지, '치건'과 '연규', '치건'과 조직 보스처럼 유사 부자 관계가 영화 내내 깔려 있다.
 

'연규'는 '치건'과 점차 닮아간다.
식습관은 물론, 그냥 해야 해서 일을 하는 것과 종반부 제자리로 돌려놓는답시고 하는 행동까지.
극이 진행될수록 치건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지만 점점 도덕적 판단을 내팽개치면서 그와 닮아간다.
치건은 연규와의 동질감을 느끼고 연규를 조직 내에서 나름 아버지처럼 챙겨준다.
하지만 조직원이라는 한계 때문일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연규의 시선에서 치건은 새아버지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새아버지라는 지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당도 한 곳은 연옥이다.
 

결국 치건은 연규에게 죽는다.
아니, 자살이라고 봐야 할까.
친부에게 버림받은 정도의 대우를 받고 조직 보스에게 모든 것을 배우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본인을 죽이면서 해방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신과 닮아가는 연규가 자신을 그만 닮길 바라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바라는, 그리고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을 연규에게 해준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는 지옥과 증오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연규는 새아버지와는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한다.
연규에 이르러서 아버지라는 악의 대물림은 끝이 난 것이다.
연규는 네덜란드로는 갈 수 없지만, 적어도 지옥 같던 고향은 벗어날 수 있었다.
 


결론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옥이 되었다.'

이 캐치프레이즈가 영화를 잘 요약하는 문장이라고 느껴진다.
다소 러닝타임이 길고 모호한 지점도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올해 만난 한국영화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길 영화가 아닐까 싶다.
 

★★★☆ (3.5 / 5.0)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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