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가능하지 못하리라고 했던 무언가가 현실로 이루어지면 어떠겠는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개봉은 내게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한 지 약 7년이 되었다.
본 영화는 800편이 넘어갔고, 그중 별 5개를 부여한 작품은 40개이다.
비율로만 따지면 많은 작품에 별 5개를 줬는데, 그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만 4개이다.
자연스럽게 하야오 감독의 새 작품에 대한 갈망이 커져만 갔고, 오늘 소원이 이루어졌다.
여러분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 작품을 얼마나 고대해 왔는가.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포함*
솔직해져야겠다.
첫인상이 굉장히 당혹스러운 건 인정해야겠다.
하야오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가진 영화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그렇다 보니 당최 어느 측면으로 접근을 해야 할지 감이 쉽사리 잡히지는 않았다.
허나 내가 느낀 것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파벨만스>라는 것이다.
영화 속 '마히토'는 하야오 감독의 어린 시절과 굉장히 닮아있다.
실제로 하야오 감독의 아버지는 제로센을 제작하는 군수업체와 관련된 일을 했고, 어머니는 늘 아프셨다고 한다.
영화의 원작 책인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또한 그의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셔서 읽었다고 하니, 마히토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캐릭터임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마히토의 여정에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적인 토대를 차지하고,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을 연속적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연속된다.
하야오 감독은 태평양 전쟁 시절 즈음에 태어났고, 격동하는 시대와 병치레로 늘 아픈 어머니를 한 아이가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영화에서 조류 캐릭터들이 많이 보인다.
마히토의 여정의 안내자가 된 왜가리나, 펠리컨들,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앵무새들이 그렇다.
새는 창작물에서 보통 자유와 동경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의 조류들은 거의 반동인물처럼 보이거나 일종의 악역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행기에 대한 애착에 빗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야오 감독은 항상 비행기에 대한 동경과 애착을 작품 속에 내비치곤 했는데, 그의 어린 시절의 비행기들은 대개 전쟁을 위한 소모품으로 이용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반전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다.
그런 아이러니를 이번 작품 속 새의 모습들로 녹여낸 게 아닐까.
왜가리의 본체가 사람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행기와 파일럿처럼 보이기도 한다.
뚫린 윗 부리를 비행기의 캐노피로 대칭시키면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세계로 인도하는 왜가리와, 살아남기 위해 태어나는 것들을 잡아먹는 펠리컨들, 통치자의 휘하 아래 세계를 지배하려다 결국 세계를 붕괴시키는 앵무새들처럼, 우리가 인식해 온 조류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죽음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보인다.
어린 시절의 미야자키는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하는 비행기를 동경해 왔지, 무의미한 살생과 희생으로 향해 나아가는 비행기를 우상으로 여긴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하야오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뭐였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릴 적 미야자키가 어머니의 선물로 받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쓴 감상문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하는 질문보다는 책에 대한 대답이자, 어머니의 선물에 대한 화답이 아닐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에게 강렬한 주제의식과 대단한 세계관과 미술을 본인 머릿속에서만 남겨두지 않고 우리에게 항상 전달해 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마히토가 큰할아버지의 세계를 이어가기보단 원래의 세계에 돌아가서 살 것이라 이야기한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도 본인이 구상한 이상적인 세계만을 스크린에 담아내기보단 불완전한 세계에 이상향을 지시하고, 세계가 가진 아픔과 흉터를 적나라하게 그리는 것을 택했다.
마히토의 이야기는 그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결과를 낳았고, 하야오는 본인의 가치관이 어떻게 마음속에 뿌리내렸는가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풀어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했기에 우리가 알아차리기는 어려운 것이다.
마히토는 흉터를 지닌 불완전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세상을 택하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마음속 흉터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의 암면이 존재해도 비행기를 사랑해 왔고, 이 세상이 전쟁과 폭력에 찌들었어도 평화를 외쳤다.
그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는 악의의 증거가 있기 때문에 무작정 유토피아를 그려내지 않았고, 않을 것이다.
대신 현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나아간다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그는 여기에 남아 묵묵히 작품을 써내려 간다.
결론
난해하다.
올해 봤던 영화 중 가장 어려운 영화다.
너무 과대해석적인 접근을 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프레임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거장의 품격은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도 와닿았고, 80세가 넘은 어르신이 본인만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쳐내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새로운 성향의 작품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마도 추가적인 관람이 있을 것 같다.
만약 아래 평점이 별 네 개가 아니라면, 내가 N차 관람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 (4.0 / 5.0)
마무리
사실 <플라워 킬링 문>도 봤는데 아직 귀찮아서 안 썼다.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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