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개인적으론 심레이싱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그나마 심레이싱에 어느 정도 가까운 '포르자 호라이즌 5'를 270시간 넘게 하긴 했지만, 튜닝도 직접 안 하고 유명 튜너들이 만들어 놓은 거 받아서 썼었다.
'아세토 코르사'도 조금 해봤었다.
물론 휠이 없어서 오래 하지는 못했다.
심레이싱 장르 자체가 엑박 패드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본론 들어가기 전에, 포스터에 저 덕업일치라고 써놓은 담당자는 대체 뭔 생각으로 저걸 써놓은 걸까.
*본인 주관이 가득 포함되어 있음*
*스포일러 주의*
본론
<그란 투리스모>는 참 기묘한 영화다.
카메라에 차량과 트랙이 잡혔을 때는 닐 블롬캠프 특유의 패기 넘치는 연출과 레이싱이 시너지를 이루지만, 드라마를 포착하는 순간부터는 2000년대에 나오던 흔해 빠진 성장 영화가 나온다.
이 영화의 레이싱 시퀀스는 훌륭하다.
닐 블롬캠프 감독은 지금까지 기계와 납탄, 피부가 맞부딪히는 액션 씬을 독특하게 표현해 왔다.
이번엔 그 대상이 차량과 아스팔트, 그리고 레이서로 훌륭하게 변주되었다.
화면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레이싱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을 보여주려고 한 흔적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답게 원작 그란 투리스모를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많고, 레이싱 장르 특유의 속도감도 잘 살아있다.
레이싱 시퀀스에 중간중간 멈추거나 타이포그래피를 과감하게 내비치는 연출도 눈에 띄는데, 흐름을 끊기보단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대단하다.
추후 다른 레이싱 장르 영화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장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란 투리스모>의 드라마는 처참하다.
레이싱 장르 영화에서 레이싱만 돋보이면 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하위 장르가 발목 인대를 끊어 놓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정말이지 레이싱 시퀀스 연출과 드라마 시퀀스 연출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다.
드라마씬 담당 감독이랑 레이싱씬 담당 감독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마가 진행되는 씬마다 의도가 뻔히 보인다.
여기선 로맨스를 담아 놓는 씬이고, 여기는 주인공과 아버지의 갈등을 담을 씬이고, 여기선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담을 씬이고...
이렇게 뻔한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기보단 파편화시켜 레이스와 레이스 사이에 흩뿌려놓으니 몰입이 어렵다.
심지어 그 연출도 십수 년 전에 나왔을, 기억에도 남지 않을 성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진부한 연출로 말이다.
흔한 드라마라도 그 표현 방식이 걸출하다면 흔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게이머에서 프로 레이서까지의 여정이라는 이야기가 흔해 보여도, 충분히 다각도로 풀어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닐 블롬캠프 감독은 이 소재를 2009년 <디스트릭트 9>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던 녹슨 방법으로 인수분해하는 선택을 했다.
결론
<그란 투리스모>는 <포드 V 페라리>의 지점까지는 다가갈 수 없는 영화다.
<포드 V 페라리>는 휴먼 드라마에서 르망 24에서의 레이싱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그만큼의 고양감도 확실하다.
<그란 투리스모>는 레이싱 장면에만 고양감이 존재한다.
드라마와 레이싱 간의 연결성의 부족으로 인해, 빈약한 드라마가 더더욱 눈에 띈다.
분명히 장점이 강한 영화지만, 단점도 너무나도 명확하다.
GT-R이 GT40을 이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 (2.5 / 5.0)
마무리
그래도 닐 블롬캠프의 가능성이 다시 보이는 영화다.
각본과 드라마 연출에 조금만 더 디테일을 보태준다면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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